ⓒ 그림책『고향의 봄』그림 김동성(2013년, 파랑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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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수문학관 자료실의 기사자료입니다. 이원수선생님과 고향의봄기념사업단 관련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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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문학가 이원수 님 '친일작품' 어떻게 볼까 (오마이뉴스 2008.5.1)
어린이 문학가 이원수 님 '친일작품' 어떻게 볼까 (책이 있는 삶 31) '친일' 작품 나왔으니 무덤에서 파내어 다시 죽이자? 이원수 선생 친일 작품 이야기가 나온 지는 2002년 3월부터이니까 제법 되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아닌 이원수 선생을 놓고 꺼내는 ‘친일부역’은 그다지 알맞아 보이지 않는다. 이원수 선생이 병을 앓아 드러누운 때가 1970년대 끄트머리요, 병실에 드러누워 입으로만 따님한테 겨우 몇 마디 읊조리면서 이야기하는 삶으로 여러 해 보내다가 1981년에 영영 떠나셨다. 세상을 떠나기 앞서 여러 해 동안 밥도 먹지 못하고 고무호스로 영양소를 위로 집어넣으며 겨우 목숨을 이어나가셨다. 살아 있는 동안 수많은 일을 하느라 당신 몸을 돌볼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동시와 동화 창작뿐 아니라 나라밖 좋은 어린이문학 번역, 그리고 뜻있는 어린이문학가를 키우고 돌보는 일과 어린이문학 단체가 비틀리지 않도록 지키면서 가꾸는 일을 한 이원수 선생이다. 그렇다. 해방 뒤, 어린이문학 단체 이끄는 일을 맡아 해 오면서, 독재정권에 빌붙는 허수아비와 끄나풀한테 얼마나 시달리던 이원수 선생이었던가. 독재정권 허수아비와 끄나풀은 얼마나 이원수 선생을 쓰러뜨려서 이 나라를 움켜쥐고 뒤흔들려고 했던가. 독재정권을 비판하고 독재정권에 빌붙는 허수아비들을 비판하는 글을 쓰면서 얼마나 공격을 받고 힘들게 살아야 했던가. 외로운 기둥이 되어 갖은 바람과 모진 말밥을 견디면서 얼마나 아이들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다하셨던가. 지난 50∼70년대, 독재정권 허수아비와 끄나풀에 맞서서 이 땅 아이들을 지키려고, 또 이 땅 아이들을 사랑하는 힘여린 동료 어린이문학가를 보듬으려고 했던 사람들은 ‘빨갱이’로 몰리고 ‘간첩’으로 몰리고 형사가 뒤를 밟고, 쓰는 글마다 검열에 시달리면서 차가운 세월을 견뎌내야 했다. 이원수 선생은 피땀을 흘리며 고달프고 외로웠어도, 또 모두들 독재자한테 입다물고 있었어도 붓을 들어 이승만을 비판하고 박정희를 비판하는 동시와 동화를 남겼다. 모두들 조용히 입닥치고 있을 때, 꿋꿋하게 붓을 들어 전태일 열사를 기리는 동화를 쓰면서 그 어둡던 세월에 아이들한테 힘과 희망을 실어 주려고 했다. 아파서 말도 제대로 못하는 몸으로 병자리에 누워 있는 1980년 그때에도 광주에서 일어나는 소식을 들으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면서, 당신이 광주 이야기를 써야 하는데 못 써서 안타깝다는 이야기만 하셨다. 곧은 한길에서 비껴나지 않으려고 꼿꼿하게 살아가셨는데, 당신이 살아오던 그동안에 당신이 할 수 있던 가장 걸맞는 ‘죄 씻기’는 무엇이었을까. 당신은 왜 당신 양심은 못 지키면서 당신 후배들과 이 나라 아이들만 지키려 했는가. 명단 4776명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친일부역을 한 숫자가 이만큼밖에 안 된다고? 친일인명사전에는 딱 한 사람만 들어가도 괜찮다. 한 사람만 넣든 백 사람을 넣든 만 사람을 넣든, 친일부역 작품 넣기로만 끝내서는 안 된다. 작품을 넘어야 한다. 친일작품을 남겼던 사람들이 보여준 그네들 삶을 함께 말해야 한다. 이들이 해방 뒤 꾸려온 삶을 함께 말해야 한다. 일제식민지 때, 친일을 하지 않고도 부자로 떵떵거리며 살던 사람은 친일작품이 없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는가. 친일작품은 없으나 독재부역에 온마음 바친 사람들은 무엇인가. 사람들 성격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속으로만 끙끙 앓으면서 사는 이가 있고, 털털하게 털어내는 사람이 있으며, 어려움을 맞불 놓듯이 헤쳐나가는 사람이 있다. 이러한 흐름과 사람 성품에서 이원수 선생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죄는 묻고, 잘잘못은 따져야 한다. 그런데 ‘이원수 선생 기리는 사업을 모두 접으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뭐하자는 소리인가? 이원수 선생 같은 분은 마땅히 기념사업을 해야 한다. 그리고 제대로 해야 한다. 이원수 선생이 살아 있는 동안 이루어낸 훌륭한 발자취는 이 발자취대로 우리들이 이어받고 물려받고 가슴에 새겨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원수 선생이 안타까이 남긴 발자취도 안타까운 발자취대로 곱새기고 되새기고 아로새겨야 하지 않을까. 티끌 한 점도 없을 줄 알았던 이원수 선생이 아니라, 우리가 모르던 아픈 티끌을 간직한 채 온삶을 보내었던 이원수 선생이었음을 헤아리면서, 배울 대목은 배우고 비판할 대목은 비판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저 ‘너, 예전에 이런 잘못을 저지른 적 있으니까, 넌 죽어서도 씻을 수 없는 전과자야!’ 하고 도장을 찍으면서 ‘죽은 주검을 파내어 사형을 시키겠다’는 소리인가. 2002년 3월에 경남대 박태일 교수가 이원수 선생 친일시 문제를 꺼냈을 때, 이오덕 선생은 “선생의 빛나는 모든 작품뿐 아니라 일제 마지막에 썼다는 그 친일 동시까지도 있는 그대로 죄다 보존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오히려 그것을 더 큰 교훈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돌아가신 선생도 저승에서, 생전에 스스로 깨끗이 보여 주지 못했던 것을 우리가 하여 준 일에 대해 다행스럽게 여길 것이다. 그리고 선생의 작품을 읽게 되는 우리 아이들까지도, 세상의 어른들이 하는 모든 일을 더 깊게 더 넓게 생각하게 되고, 더 참되게 깨닫고 배우게 될 것이다. 이 세상을 완전무결한 성인군자처럼 살아간 위인에게서보다도 결함이 있었던 사람, 자기와 비슷한 점이 있었던 사람한테서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되듯이, 나도 한때 잘못했지만 그것을 뉘우치고 바르게 살면 얼마든지 큰 일을 할 수 있구나 하고 자신감을 가지게도 될 것이다”고 이야기했다. 훌륭하게 남긴 작품은 훌륭한 모습이고, 안타까이 남긴 자취는 안타까운 자취다. 어느 하나는 씻어내거나 없는 듯 꾸밀 수 없고, 어느 하나만 돋보이도록 할 수 없다. 이렇게 해야 살아 있는 가르침이 되지 않겠나. 친일인명사전을 만드는 뜻도 이런 데에서 찾을 수 있지 않나? 한 사람 삶과 발자취를 깊이 더듬거나 헤아리는 가운데 ‘이런 잘못을 드러내고자 하는 일은 우리 역사를 바로잡아 가르치고자 함’이라 한다면, ‘때려잡기’가 아닌 ‘살아숨쉬는 가르침’이 되도록 슬기로운 길을 함께 찾아야 하리라 본다. 친일인명사전은 인기투표 하는 사전이 아니다. 이름을 깎아내리거나 땅속에 파묻어 버리자는 사전도 아니다. 우리가 참답고 아름다이 살자고 하는 사전이다. 한 점 티끌이 없을 줄 알았던 사람한테서도 티끌이 있었음을 느끼고 실망하거나 내동댕이치자는 친일인명사전인가? 한 점 티끌을 감싸안으면서 이와 같은 슬픔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가슴에 새기고 되뇌이자고 하는 친일인명사전인가? (웅진출판사,1984)이라는 이원수 선생 수필에 나오는 글을 몇 대목 옮겨 본다. 도둑의 이야기가 났으니 하나만 더 하기로 하자. 어느 겨울의 일이다. 내 집에도 인기척을 듣고 나가 보니, 키가 큰 사나이가 대문을 나가고 있었다. 좀 무서웠다. 그러나 나갔으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내 딸아이가 하는 말이, “아버지, 내 새로 산 장갑 여기 뒀었는데 가져갔어요?” 했다. 식구들이 사방을 두루 살펴보아도 없어진 건 따로 없었다. 그럼 도둑은 기껏 내 딸의 장갑만 집어간 것이다. 큰마음먹고 남의 집에 들어온 도둑으로서는 참으로 보람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별로 가져갈 만한 물건이 없는 것은 내가 부자의 생활을 못했기 때문이겠지만, 아무튼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추운 겨울이다. 이런 때, 장갑은 역시 필요한 물건이다. 몇 푼어치 되지도 않는 장갑만 들고 도망친 그 도둑은 그 장갑을 어떻게 했을까? 그까짓 것 어디 갖다 팔아도 돈이 될 것도 아니다. 그러면 그 도둑은 어쩌면 제 딸아이나, 제 누이동생에게 그 장갑을 주었을 때, 딸이 어쩌면 이렇게 물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 이거 샀어?” 그러나 그 장갑은 새것이기는 하지만 몇 번 낀 것이니까 아주 새것은 아니다. 그 딸도 그런 것쯤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때 그 아버지는 뭐라고 대답했을까? 대답하기가 어려워서 어색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딸아이가 만일 내가 보는 자리에 그 장갑을 끼고 나타났다면, ‘얘, 그 장갑 어디서 났니? 그건 우리 거야, 이리 내!’ 하고 말할 생각은 아예 없다. 나는 그 아이의 장갑 낀 손을 덥석 잡고, ‘아가, 너 장갑 좋구나! 엄마가 사 줬니?’ 하고 어루만져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태연히 참고 있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잘못하면 그 애의 손을 잡고 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났다. (이원수 '잃어버린 장갑') 나막신 장수는 비가 와야 좋아하고 미투리 장수는 날이 개어야 좋아하는 것같이, 지루한 비라도 다들 싫어할 때도 우산을 파는 아이들은 좋아 날뛰는 광경도 자주 본다. 그러나 가장 두려운 것은 다음과 같은 경우이다. 8ㆍ15 해방이 되어 모두가 다 좋아했는데 그 중에는 은근히 싫어한 사람도 있었고, 남북통일은 우리 민족 모두가 바라는 것이지만 은근히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이원수 '태풍 '빌리' 호와 포플러숲의 바람')
2015-04-16 | 작성자 : 이원수문학관 | 조회수 :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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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관광 30선' 인기 1위 주남저수지 (뉴시스 2011.2.11)
'창원관광 30선' 인기 1위 주남저수지 | 기사입력 2011-02-11 13:21 【창원=뉴시스】김상우 기자 = 경남 창원시에서 가장 인기있는 관광지는 주남저수지로 조사됐다. 창원시는 지난해 12월6일부터 1월까지 시홈페이지에서 관광객 854명을 대상으로 관광지 설문조사를 벌여 '창원관광 30선'을 선정했다고 11일 발표했다. 또 시티투어관광지, 산업탐방, 생태환경탐방, 축제관광, 트레킹 희망 산, 웰빙음식관광지, 문화예술관광 등 태마별 선호 관광지도 공개했다. 창원관광 30선은 주남저수지, 돝섬해상 유원지, 용지호수, 저도연육교, 마창대교, 진해해양공원, 마산어시장, 무학산 서원곡, 해양드라마세트장, 해군사관학교박물관, 성주사, 문신미술관, 진해드림파크 목재체험, 팔용산 돌탑, 마금산 온천, 국립3.15국립묘지, 창원의 집, 장복산 공원, 마산항야경, 창원과학 체험관, 벚꽃거리, 천주산, 제황산공원, 진해루, 경남도립미술관, 성산패총, 봉암수원지, 진해파크랜드, 웅산 시루봉, 내수면환경생태공원 등이다. 시티투어관광지는 주남저수지, 저도연육교, 마창대교, 진해해양공원, 마산어시장, 해양드라마세트장, 해군사관학교박물관, 문신미술관, 국립3.15국립묘지, 경남도립미술관이다. 산업탐방은 두산중공업, LG전자, GM대우, 마산자유무역지역, 진해경제자유지역, 경남로봇산업진흥원, 경남테크노파크를 선호했다. 생태환경탐방은 주남저수지, 내수면생태환경공원, 진해 목재문화체험장, 에너지환경 과학공원, 봉암갯벌로 나타났다. 축제관광은 진해군항제, 가고파국화축제, 마산어시장축제, 천주산진달래축제, 세계군악페스티벌, 창원페스티벌, 만날제, 남산상봉제이다. 트레킹하고 싶은 산은 무학산, 천주산, 장복산, 팔용산, 정병산, 시루봉, 적석산, 비음산이다. 웰빙음식관광지는 어시장 활어회거리, 마산 아구찜거리, 마금산 온천, 북면막걸리 촌두부, 어시장 장어거리, 어시장 복어거리, 양촌온천, 석쇠불고기 등이다. 문화예술관광은 시립문신미술관, 도립미술관, 3.15아트센터, 김달진문학관, 이원수문학관, 창원문학관, 창원음관, 성산아트홀 등을 꼽았다. 창원관광활성화 방안으로는 축제통합, 관광일주도로개설, 시티투어 2층버스 도입, 해안선 감상 관광코스개발, 창원만의 잊지 못할 추억의 거리 조성, 북면 막걸리 제조체험, 크루저급 해상유람선 관광개발, 마창대교 불빛축제 개최, 해양드라마세트장 근처 해수욕장 설치 등을 제시했다. 시는 설문조사 결과를 관광객 유치를 위한 관광상품 개발, 태마별 관광코스 지정에 활용할 방침이다. woo@newsis.com
2015-04-16 | 작성자 : 이원수문학관 | 조회수 :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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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봄' 탄생지는 마산 오동동 71번지 (중앙일보 2011.1.31)
‘고향의 봄’ 탄생지는 마산 오동동 71번지 이원수 선생 작사 당시 주소 확인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은 이원수(1911~1981) 선생이 ‘고향의 봄’을 창작한 장소가 85년 만에 처음으로 확인됐다. 이 선생이 시를 쓰고 홍난파 선생이 곡을 붙인 ‘고향의 봄’은 국민적인 동요로 사랑을 받고 있지만 어디서 만들었는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었다. 이원수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회 는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 71번지 일대가 1926년 이 선생이 고향의 봄을 창작해 발표한 곳”이라고 30일 밝혔다. 기념사업회는 일제 강점기의 지적도를 보유한 건축사 신삼호(51)씨의 도움을 받아 선생이 노래를 지어 26년 8월 언론사에 투고할 때 사용한 주소인 마산부 오동리 71번지가 지금의 오동동 71번지와 일치 하는 것을 확인했다. 오동동 71번지는 현재 71-1부터 71-4까지 분할돼 주택 4채가 들어서 있다. 이원수 연구가인 박종순(아동문학평론가) 박사는 “선생의 호적부에는 1922년에 김해군 하계면 진영리에서 마산부 오동리 80번지로, 다시 2년 뒤 인근 71번지로 이사했다는 기록이 있어 오동리 71번지가 고향의 봄을 창작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창원=황선윤 기자
2015-04-16 | 작성자 : 이원수문학관 | 조회수 :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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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봄, 창원 오동동 71번지에서 탄생" (경남도민일보 2011.2.8)
"고향의 봄, 창원 오동동 71번지에서 탄생" 이원수기념사업회 "창작 터 확인 … 표석 설립·문학길 조성 추진" 이원수탄생100주년기념사업회가 '이원수 문화브랜드사업'을 추진 중인 가운데, 최근 '고향의 봄' 창작 터가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 71번지인 것으로 확인됐다. 김일태 이원수탄생100주년기념사업회 추진위원장은 "'고향의 봄' 창작터를 85년 만에 찾아냈다"며 "앞으로 이곳에 창작 터 표석을 세우고 '고향의 봄 창작 길'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이원수 연구가인 아동문학평론가 박종순 박사는 "1926년 에 '고향의 봄'을 발표한 후 동아일보 8월 19일자에 동시 '병든 동생'을 내면서 '오동리 71번지'란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고 말했다. 기념사업회는 지난 29일, 마산도시탐방대원인 신삼호 건축사의 도움으로 '마산부 오동리 71번지' 현장을 직접 찾아 '고향의 봄' 창작터를 직접 확인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기념사업회는 이번에 확인된 오동동 창작 터를 중심으로 선생이 걸어다닌 마산공립보통학교(현 성호초교)와 마산상업학교(현 상남성당), 함안독서회 사건으로 10개월 옥고를 치른 마산형무소 터, 원형이 그대로 남아있는 산호동 신혼집과 우물, 작품의 배경이 된 교방동 철길과 3·15의거 발원지 등을 잇는 문학의 길을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이에 송철식 마산민예총 회장은 "이원수 문학길이 만들어져 원도심 재생사업의 콘텐츠로 활용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종순 기자 | yard@idomin.com
2015-04-16 | 작성자 : 이원수문학관 | 조회수 :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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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봄' 창작터 마산 오동동 71번지 확인 (경남일보 2011.2.1)
‘고향의 봄’ 창작터 마산 오동동 71번지 확인 이원수 선생 탄생 100주년 사업회 동요 발표 신문사 투고 주소 근거 정일근 경남대 교수, 송철식 마산민예총회장, 박종순 아동문학평론가, 김일태 기념사업회 추진위원장, 신삼호 건축사,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이원수 선생의 동요 ‘고향의 봄’ 창작터가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 71번지로 밝혀졌다. 이원수선생탄생100주년기념사업회는 현재의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 71번지 일대가 85년 전인 1926년 이원수 선생이 동요 ‘고향의 봄’을 지은 창작터인 것으로 확인했다고 1일 밝혔다. 사업회는 지난달 29일 마산도시탐방대원인 신삼호 건축사의 도움으로 선생이 고향의 봄을 창작후 동아일보 등에 투고한 동요 등에 사용한 주소 ‘마산부 오동리 71번지’ 현장을 직접 확인했다. 동행한 이원수 선생 연구가인 아동문학평론가 박종순 박사는 “선생의 생전 기록에 1924년 71번지로 이사했다는 것이 나온다”면서 ‘1926년 어린이지에 ‘고향의 봄’을 발표한 후 동아일보 8월 19일자에 동시 ‘병든 동생’을 발표하면서 ‘오동리 71번지’란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 건축사는 “당시 오동리 71번지는 지금의 오동동 71번지가 맞다”며 “다만 지금은 오동동 71번지가 71-1, 71-2, 71-3, 71-4번지로 분할되었다”고 확인했다. 김일태 기념사업회 추진위원장은 “오동동 71번지에 창작터 표석을 세우고, 창작터를 중심으로 선생이 걸어다닌 마산공립보통학교(옛 성호초교)와 마산상업학교(현 상남성당), 함안독서회 사건으로 10개월의 옥고를 치른 마산형무소터, 산호동 신혼집 등을 잇는 문학의 길을 만들겠다”고 앞으로 계획을 밝혔다.
2015-04-16 | 작성자 : 이원수문학관 | 조회수 :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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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수 탄생 100 주년 기념사업 선포 (경남도민일보 2011.1.25)
이원수 탄생 100 주년 기념사업 선포 흉상 제막식도 함께 열려…학술세미나·문학상 제정·기념집 발간 등 예정 '이원수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 선포식 및 흉상 제막식'이 24일 오후 창원시 팔룡동 고향의 봄 도서관에서 열렸다. 이원수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회와 (사)고향의봄기념사업회 주최, 주관으로 열린 이 행사에는 대회장을 맡은 경남대 박재규 총장과 박완수 창원시장, 최충경 창원상공회의소 회장, 경남예총 이종일 회장 등 150여 명의 각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한국아동문학협회와 경남문인협회 소속 문인들도 함께 했다. 1911년 11월 출생해 1981년 1월 24일 별세한 '고향의 봄'의 작가 이원수의 탄생 100주년에 즈음한 기념사업 선포였다. 이날 박재규 총장은 대회사에서 "이원수 선생의 탄생 100주년이 창원시를 '동심의 고장'으로 만드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원수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 선포식 및 흉상 제막식이 24일 오후 창원시 의창구 팔룡동 고향의 봄 도서관 동원홀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내외빈들이 흉상 제막 후 박수를 치며 축하하고 있다. /박일호 기자 iris15@ 이어 박완수 시장은 "문학과 도시의 가치는 연결된다"면서 "이 일이 통합 창원시의 가치를 부여하고, 도시의 브랜드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지난해 창원시의 '야철축제'를 '고향의 봄 축제'로 개명했던 일을 상기하고, 앞으로 이전할 39사단 자리에 '고향의 봄 공원'을 조성할 계획도 비쳤다. 이날 선포식과 흉상 제막을 시작으로, 오는 4월 학술세미나와 '고향의 봄 어린이잔치', 10월의 '이원수문학상 제정 및 시상'과 기념집 발간 등으로 이어진다.
2015-04-16 | 작성자 : 이원수문학관 | 조회수 :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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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수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 본격 추진 (아시아뉴스통신 2011.1.24)
'이원수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 본격 추진 이원수문학관서 흉상제막식도 가져 기사입력 : 2011년01월24일 18시09분 (아시아뉴스통신= 최근내 기자) 경남 창원의 자랑이자 전 국민의 애창곡 ‘고향의 봄’을 지은 이원수 선생이 탄생 100주년을 맞아 창원에서 새롭게 태어난다. 창원시는 24일 오후 2시 고향의봄도서관 내 동원홀과 이원수문학관에서 한국아동문학의 거목 동원 이원수 선생의 탄생 100주년이자 타계 30주기 기념사업 선포식 및 흉상제막식을 가졌다. 이날 전국의 문화예술계 인사로 이뤄진 이원수 탄생100주년 기념사업회(대회장 박재규 경남대 총장)와 박완수 시장, 김이수 시의회 의장, 도내 기관단체대표 등 전국의 문학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행사가 진행됐다. 또 동원 이원수 선생(1911~1981년)의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키로 했다. 이날 창원시립소년소녀합창단의 축하공연을 시작으로 이원수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영상물 상영, 추모시 낭송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사업 선포식에 이어 이원수문학관으로 자리를 옮겨 창원지역 출신 김동숙 조각가가 제작한 이원수 선생의 흉상제막식이 거행돼 사업 시작의 의미를 더욱 뜻 깊게 했다. 시는 이와 함께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4월 중 ‘100주년 기념학술세미나’와 ‘고향의 봄 어린이잔치’를 펼치고 이원수 문학상 제정 및 시상/ 기념문집 ‘겨울나무의 노래’ 발간/ 100주년 기념 종합영상자료 제작 등 다양한 사업을 연중 펼칠 계획이다. 특히 기념사업회는 100주년 기념사업과 연계해 ‘창원아동문학 세계대축전’도 마련해 창원시의 대표적 문화브랜드로 육성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한편 이원수탄생 100주년기념사업회의 명예대회장에는 박완수 창원시장이, 대회장에는 박재규 경남대 총장, 추진위원장에는 김일태 창원예총회장이 추대됐다.
2015-04-16 | 작성자 : 이원수문학관 | 조회수 :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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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이원수 선생 탄생 100년 행사 풍성 (동아일보 2011.1.26)
[부산/경남]창원, 이원수 선생 탄생 100년 행사 풍성 고향의 봄 잔치… 학술세미나… 기념집 발간 국내 아동문학의 거목인 동원 이원수 선생(사진) 탄생 100주년 및 타계 30주기를 맞아 그를 기리는 기념사업이 경남 창원과 서울에서 다양하게 펼쳐진다. ‘이원수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회’(회장 박재규 경남대 총장)는 이 선생 타계 30주기인 24일 창원 고향의 봄 도서관 동원홀에서 박완수 창원시장, 이만기 경남문화재단 대표, 이종일 경남예총 회장 등 기관단체 대표와 전국 문학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원수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 선포식 및 흉상 제막식’을 가졌다. 선포식에서는 창원시립소년소녀합창단 축하공연, 이원수 선생 탄생 100주년 영상물 상영, 추모시 낭송 등에 이어 각종 기념사업이 선포됐다. 주요 기념사업은 4월 1일 고향의 봄 도서관 동원홀에서 이원수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를 여는 데 이어 그 다음 날부터 이틀간 창원용지문화공원에서 ‘고향의 봄 어린이잔치’가 마련된다. 10월에는 이원수 문학상 제정 및 시상, 이원수 탄생 100주년 기념집 ‘겨울나무의 노래’(가칭)를 발간한다. 이원수 선생 100주년 기념 종합영상자료도 제작한다. 연계사업으로 이원수 문학기행과 이원수 탄생 100주년 특별기획 근대 아동문학도서전, 칸타타 ‘고향의 봄’ 공연, 고향의 봄 창작동요제, 고향의 봄 바이올린 협주곡 공연, 고향의 봄 예술제, 이원수 문학의 밤, 국제아동문학축전, 문학 그림전, 논문집 발간 등이 창원과 서울에서 계속된다. 김일태 이원수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회추진위원장은 “올해는 이원수 선생의 삶과 문학세계를 되짚어보는 각종 기념사업을 통해 한국 아동문학사적인 의의를 정립하면서 통합창원시의 대표적 문화브랜드로 육성하겠다”고 말했다. 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2015-04-16 | 작성자 : 이원수문학관 | 조회수 :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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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벡 교민들의 '나의 살던 고향'... 붉어진 눈시울 / 2013.11.1 노컷뉴스
우즈벡 교민들의 '나의 살던 고향'... 붉어진 눈시울 삼성전자,우즈벡 한인 합창단 후원 고국 공연 2013-11-01 15:00 CBS노컷뉴스 조백근 대기자 삼성전자가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합창단의 한국 방문을 후원해 이들의 고국 공연을 성사시켰다. 삼성전자는 1일 경기도 용인 문예회관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거주지 '이크마을' 한인 합창단 '천지꽃'의 고국 방문공연을 후원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2011년부터 프렌드아시아(국제개발협력 NGO)와 함께 중앙아시아 동포들을 지원하는 '한민족 愛 희망나누기' 사업을 진행해 왔고 이번 공연도 해당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했다. 우즈베키스탄 이주 한인 2세대로 이루어진 '천지꽃 합창단'은 총 25명으로 구성된 평균연령 77세의 합창단으로 지난달 28일 난생 처음 고국을 방문,부모에게 말로만 듣던 본가를 방문하는 등 분주한 일정을 보내고 꿈에 그리던 고국 공연으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나의 살던 고향'을 주제로 열린 이번 공연에는 '아리랑','고향의 봄' 등 다양한 우리 노래가 울려 퍼졌으며, 공연장을 찾은 500여 명의 지역 주민들과 삼성전자 임직원들도 눈시울을 붉혔다. '천지꽃 합창단' 단원 림바 유(69) 할머니는 "한복을 입고 그 동안 연습한 우리의 노래를 고국의 동포들에게 들려주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었다"며 "먼 곳에서도 나의 뿌리를 잊지 않고 우리 민족의 전통을 후손에게 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3-11-19 | 작성자 : 이원수문학관 | 조회수 : 1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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